대구활소개
조선효종실록(1655.2.6.)에 따르면 “병마절도사가 대구 읍성의 무기고를 검열하니 대구부사 이정이 새로 만든 활(죽궁)이 있어 임금에게 받치니 크게 기뻐하였다.”라고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다.
죽궁의 본고장 대구
죽궁에 대한 얘기는 조선왕조실록 중종 때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.
병조판서 고형산이 죽궁을 바치면서 활의 세기가 목궁보다 갑절이나 강하고
각궁은 흙비에 파손되지만 죽궁은 파손되지 않아 전장에서 매우 유효함을 강조하는 부분이 나온다.
또 효종 때의 기록에는 죽궁의 본고장이 대구였음을 암시하는 대목이 있다.
북벌을 계획했던 효종이 대구부사 이정이 보고한 죽궁에 관심을 보였고 이 때부터
대구에서 제작된 죽궁이 조선 후기까지 전국 팔도에 보급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.
그로부터 300여 년이 지난 지금 죽궁의 흔적을 찾아볼 길이 없다.
대구 부사 이정을 통정계(通政階)로 특별히 승진시켰다.
본도의 병마절도사(兵使) 가 본 읍의 군기(軍器)를 검열하고서
이정이 새로 만든 죽궁(竹弓)의 제도를 계문하니, 특별히 칭찬하는 명이 있었다
조선왕조실록 효종실록 14권(효종 6년 1655년 신유 2월 6일)